오늘 이스탄불 서쪽 외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아브즈라르의 중심가를 산책하다가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예닐곱명 정도 공원 한 켠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 지나가는 길에 길 가쪽으로 화단에 걸터앉은 청년의 티셔츠에 한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길래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가 바로 Ahmet Kaya였다.

그가 누구냐고 했더니 Sanatçı(예술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냐, 시인이냐? 했더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냐고 했더니 몇 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뭐라고 하는데 정확히 못 알아들으니.. 옆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쿠르만지, 쿠르만지” 한다. 쿠르드족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그 젊은이들과 간단히 대화하고 가던 길을 갔다.

아흐멧 카야는 1957년 10월 28일 터키 동부 말라탸에서 태어났으며 20대를 이스탄불에서 보냈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서 유명해지기 전에 20대 초반에 이스탄불에서 택시 운전기사로 일했었다.

그의 나이 28세때인 1985년 첫번째 앨범, “Ağlama Bebeğim”을 내면서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1980년대와 90년대에 그의 인기는 크게 치솟았다. 1994년 발간한 앨범 , Şarkılarım Dağlara는 280만장이나 팔리면서 인기절정에 오르게 되었다.

1999년 2월 10일 예능 TV 채널인 SHOW TV에서 올해의 음악가로 그가 상을 받게 되었다. 그의 시상식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영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쿠르드족 배경이라는 것을 밝히고 쿠르드어로 노래를 부르고 싶으며 쿠르드어 앨범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다. 이 방송이 나가자마자 터키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심하게 받게 되었다. 1999년 상반기 터키에서는 그의 발표로 인해 쿠르드 문제가 다시 한번 뜨겁게 달궈지게 되었다.

이러한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1999년 6월 그는 프랑스로 마치 도피해가듯이 이주하였다. 그가 없는 터키내에서는 그의 정치성향을 놓고 법정에서는 분리주의자라는 죄명으로 3년 9개월 징역을 처분하기 까지하였다.

아흐멧 카야는 2000년 11월 16일 43세의 나잉로 심장발작으로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Père Lachaise cemetery에 묻혀 있다.

아래 동영상은 아흐멧 카야에 대한 30분 짜리 다큐멘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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